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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힘든 한국생활...하지만 나는 배워야 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2022.11.18 09:02
조회수 671
Reporter Hasung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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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한줄요약

군포시가족센터, ‘홈커밍 데이’ 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 발표③ 이유리 씨

게시물 내용

다음 글은 지난 11월 5일 진행된 ‘군포시 가족 홈커밍 데이’에서 북한 출신 이유리 씨가 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를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유리 씨는 싱글맘으로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유리입니다. 저는 현재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꿈에서만 갈 수 있는 북한입니다. 저는 26년간 북한 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가게 되어 4년간 생활하면서 지금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불법체류 상태) 매일 숨죽이고 살아가던 중 공안(경찰)이 잡으러 왔는데 운 좋게 풀숲이 무성한 산으로 숨어 목숨만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피부가 무언가에 긁혀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번 더 경찰이 잡으러 온다면 이번에는 아기를 안고 산으로 도망갈 수도 없어 저는 5개월 된 아들과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2017년 걸음마 떼는 아들과 한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그것만으로 나 자신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변 언니의 도움으로 한국의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상자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제가 말이 어눌하고 신입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제일 무거운 50킬로그램 짜리 상자들을 나르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열심히만 했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옷이 젖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얼마나 시원한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성분이 의자에 편히 앉아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런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반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반장님은 회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배우면 시원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하면 죽기 살기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저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배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자부담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하여 오전에는 공부, 오후에는 아르바이트, 주말에는 실습을 하며 9개월 만에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차별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제가 1학년 시절 아들이 4살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도 못 뜨는 아기를 안고 어린이집 문을 제일 먼저 두드리고 또 제일 늦게 데리러 가면 엄마로서 정말 미안했고 또 너무 지쳐있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기 싫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연기를 자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수업마치고 봉사와 아르바이트, 조별과제,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석하였고 하루 몇 시간씩 자면서 하다 보니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이유는 차별과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조무사 실습을 할 때 제가 실습기구 하나만 틀리게 놓아도 치과 선생님들은 “저 사람은 북한에서 탈북했대. 그래서 뭘 모르나 봐“라며 뒤에서 계속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생활하면서 차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투명인간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에게는 화장실이 가장 편한 장소였습니다. 상담을 받으며 저만 차별당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면 한국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삶...나는 어디로 가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북한에서 왔으니 모를 때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는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배움을 멈추지 않고 방학을 이용하여 사회복지에 필요한 컴퓨터와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저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에 왔는데 쳇바퀴 돌 듯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3학년이 됐을 때는 “과연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이렇게 뛰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한국에 도착한 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따뜻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복지사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은 무엇이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불안하지만 나에겐 힘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무엇이든 일만 맡겨주시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보다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야 하기에 불안합니다. 

제가 벌어야만 아들을 키우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일 때는 일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저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겸손해야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통일된 이후 복지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에게 상담을 알리고 또 한분 한분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만나는 모든 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차별은 있어도 그 차별을 딛고 서는 힘도 나에게 있다”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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